솔직히 말하자면, 몇 년 전만 해도 ‘글로벌 AI 판’에서 한국은 항상 약간은 주변부에 머무르는 느낌이었다.
반도체 기술은 세계 탑인데도, 데이터센터나 AI 서비스 생태계의 중심 결정권은 미국 실리콘밸리와 몇몇 글로벌 기업 쪽에 더 많이 쏠려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번 젠슨 황(NVIDIA CEO)의 방한 소식은 단순한 ‘방문’ 이상으로 느껴졌다.
그는 APEC CEO 서밋 참석을 계기로 한국을 다시 찾았고, 대외적으로는 15년 만의 재방문이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 이 점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나는 이 방문을 ‘약속의 재설정’이라고 부르고 싶다.
단순히 명예 방문으로 끝나지 않고, 삼성·SK 같은 한국의 핵심 기업 대표들과 별도 회동이 예정되어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기대감이 커졌다.
엔비디아가 반도체·AI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쥐고 있는 기업인 만큼, 그의 발걸음이 단순한 연설 이상의 실무적 대화(칩 공급, 데이터센터 인프라, 공동 R&D 등)를 뜻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실제로 젠슨 황은 APEC 기간 중 한국의 반도체 공급사들과 별도 회동을 가질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그리고 이 만남이 왜 ‘빅딜’로 불릴 만한지, 내 관점은 이렇다.
지난 몇 달간의 흐름을 보면 OpenAI 같은 대형 AI 플레이어들이 한국의 삼성·SK와 대규모 공급·데이터센터 협약을 체결하거나 논의해 왔다.
대형 모델을 돌리려면 HBM 같은 고성능 메모리와 대규모 전력·냉각 인프라가 필요하다.
한국은 이 분야에서 ‘공급망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고, 글로벌 AI 기업들은 그걸 절실히 필요로 한다.
이런 상황에서 엔비디아가 한국의 반도체·인프라 핵심 기업들과 손을 잡는다면, 단순한 상호 보완을 넘어서 ‘한국을 AI 생태계의 전략적 허브’로 올릴 수 있는 전환점이 된다. (최근 OpenAI와 삼성·SK 관련 보도와도 맥이 닿는다.)
내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상호 의존성’의 방향성이다.
과거에는 한국 기업들이 ‘반도체 부품 공급자’로서 역할이 강했다면, 이제는 데이터센터 설계·운영, AI 서비스 플랫폼, 에너지·냉각 솔루션 같은 복합 역량을 묶어 ‘AI 인프라 생태계’를 함께 설계할 수 있는 위치로 올라가고 있다.
SK가 AWS와 함께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짓는 계획, 삼성의 플로팅 데이터센터 논의 같은 움직임은 단순히 공장 하나 더 짓는 이야기가 아니다 — ‘데이터·컴퓨팅 허브’로서의 위상을 올리는 전략이다.
이 또한 최근 보도로 확인된다.
물론 나는 낙관주의자만은 아니다.
첫째, 글로벌 지정학(미·중 기술경쟁, 수출 규제 등)은 언제든 변수다.
둘째, ‘빅딜’이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려면 기술·자금·정책(전력·토지·규제 완화)·인력 등 현실적 비용을 모두 맞춰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내부에서도 ‘데이터 주권’·‘안전성’·‘공정한 이익 분배’ 같은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젠슨 황의 방한이 거대한 가능성의 문을 연 것은 맞지만, 문을 열었다고 해서 자동으로 모든 것이 풀리는 건 아니다 — 이후의 실행력이 관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 한켠에는 기대감이 있다.
왜냐하면 한국에는 이미 실전형 역량이 있다. 메모리 반도체 기술, 제조 역량, 글로벌 공급망 경험, 그리고 최근의 데이터센터 투자 의지까지. 여기에 엔비디아 같은 생태계 설계자가 관심을 갖고 파트너십을 맺는다면, ‘15년의 공백’은 단순한 방문 이상의 역사적 전환이 될 수 있다.
이번 APEC 기간 젠슨 황의 행보(연설·개별 회동·공장 방문 가능성 등)는 그런 가능성을 시험대에 올려놓는 사건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바람을 하나 적자면 — 이번 만남이 ‘단발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대화가 꾸준한 프로젝트로 이어져서 기술 이전, 공동 연구, 인력 교류, 지역 기반의 친환경 데이터센터 구축 같은 구체적 결과로 연결되길 바란다.
그래야 우리 사회와 산업이 장기적 이득을 볼 수 있다.
젠슨 황의 방한은 출발 신호탄에 가깝다 —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함께 달릴지, 그 스피드를 조절하고 방향을 잡는 일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