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가 세상을 바꿨다면, 롤링 스톤즈는 세상의 태도를 바꿨다.”
롤링 스톤즈 데뷔 이야기 | 1962년 ‘Come On’으로 시작된 전설
The Rolling Stones – 데뷔 활동 시작 (1962)

“비틀즈가 세상을 바꿨다면, 롤링 스톤즈는 세상의 태도를 바꿨다.”
1960년대 초반 영국.
전후 세대의 청춘들은 더 이상 부모 세대의 가치관에 순응하지 않으려 했고,
재즈와 팝, 스키플(band), 포크 위주의 음악 세계는 점점 더 거칠고 본능적인 소리를 갈망하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훗날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록 밴드”라 불리게 될 다섯 명의 청년이 있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전설이 아니었다.
오히려, 우연과 집착, 음악에 대한 광적인 사랑, 그리고 약간의 불운이 섞여 만들어진 밴드였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1. 전부는 ‘미국 블루스’에서 시작되었다
롤링 스톤즈를 이해하려면, 먼저 미국 블루스를 이해해야 한다.
1950~60년대 영국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미국 흑인 블루스 레코드를 수입해 듣는 것이 일종의 “지적 반항”이었다.
라디오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음악, 미국 남부의 가난과 고통, 성(性)과 분노가 그대로 녹아 있는 음악.
그리고 이 음악에 미쳐 있던 두 청년이 있었다.
2. 믹 재거와 키스 리처즈 – 학교 친구에서 운명 공동체로
✔ 믹 재거 (Mick Jagger, 1943년생)
- 런던 교외 다트포드 출신
- 중산층 가정,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
- 런던 정치경제대(LSE) 재학
- 척 베리, 리틀 리처드, 무디 워터스 같은 블루스·록앤롤 가수들의 열혈 팬
- 음악보다는 학업과 사회적 성공이 먼저였던 인물
✔ 키스 리처즈 (Keith Richards, 1943년생)
- 믹과 같은 동네, 같은 학교 출신
- 훨씬 반항적인 기질
- 기타에 인생을 건 타입
- 집에 블루스 레코드가 가득했고, 음악에 대한 집착은 이미 병적인 수준
두 사람은 초등학교 시절 친구였지만, 중학교 이후 각자의 길을 가며 연락이 끊겼다.
그러다 1961년, 다트포드 기차역 플랫폼에서 우연히 다시 마주친다.
믹의 손에는 척 베리와 머디 워터스 LP가 들려 있었고,
키스는 그 레코드를 보고 단번에 말을 걸었다.
“야, 너도 이 음악 듣는구나?”
이 짧은 한마디가, 록 음악 역사를 바꿨다.
3. 브라이언 존스 – 밴드의 실질적 창립자
롤링 스톤즈에서 가장 과소평가되었지만,
결성의 핵심 인물은 사실 믹도, 키스도 아닌 **브라이언 존스(Brian Jones)**였다.
✔ 브라이언 존스 (1942년생)
- 첼트넘 출신
- 클래식 피아노 교육을 받았고, 악기 다수 연주 가능
- 성격은 예민하고 예술가적이며 통제 욕구가 강함
- 당시 영국에서 보기 드문 순수 블루스 마니아
1962년 초, 그는 런던에서 블루스 밴드를 만들기 위해
음악 잡지 Jazz News에 광고를 냈다.
“리드 기타리스트 모집. 시카고 블루스 중심 밴드.
진지한 연주자만 연락 바람.”
이 광고를 본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믹 재거와 키스 리처즈였다.
4. 첫 멤버들 – 우연히 모인 ‘블루스 덕후들’
브라이언 존스가 만든 초기 밴드는 지금 우리가 아는 롤링 스톤즈와는 멤버 구성이 조금 달랐다.
초기 멤버 구성:
- 브라이언 존스 – 기타, 슬라이드 기타, 하모니카 등 다중 악기
- 믹 재거 – 보컬
- 키스 리처즈 – 기타
- 이안 스튜어트 (Ian Stewart) – 키보드
- 딕 테일러 (Dick Taylor) – 베이스
이들은 1962년 초부터 런던 일대 클럽에서 블루스 커버 중심으로 공연을 시작했다.
이 시기의 레퍼토리는 거의 전부 미국 흑인 블루스였다.
- 머디 워터스
- 하울린 울프
- 지미 리드
- 엘모어 제임스
당시 영국 밴드들이 팝과 재즈, 스키플 위주였다면, 이들은 거의 흑인 블루스 리바이벌 집단에 가까웠다.
5. ‘The Rolling Stones’라는 이름의 탄생
밴드 이름은 브라이언 존스가 즉석에서 정했다.
한 공연 기획자가 전화로 밴드 이름을 물었을 때, 브라이언은 주변에 놓인 레코드를 보고 대답했다.
그것은 바로 머디 워터스의 곡 〈Rollin’ Stone〉.
“We’re the Rolling Stones.”
이 순간,
훗날 60년 넘게 록 역사에 군림할 이름이 탄생했다.
6. 드러머 찰리 왓츠와 베이시스트 빌 와이먼의 합류
초기 라인업은 안정적이지 않았고,
특히 리듬 섹션은 계속 바뀌었다.
✔ 찰리 왓츠 (Charlie Watts)
- 원래 재즈 드러머
- 광고 디자이너로 일하던 중 밴드에 합류
- 겉모습은 점잖았지만, 연주는 단단하고 정확했음
- 롤링 스톤즈 특유의 “절제된 그루브”의 핵심
✔ 빌 와이먼 (Bill Wyman)
- 기존 베이시스트 딕 테일러가 탈퇴한 후 합류
- 연장자였고, 악기와 장비를 직접 갖춘 몇 안 되는 멤버
- 실용적이고 안정적인 연주 스타일
이 두 사람이 합류하면서
비로소 우리가 아는 클래식한 롤링 스톤즈 라인업이 완성된다.
7. 데뷔 무대 – 1962년 7월 12일, 마퀴 클럽
롤링 스톤즈의 공식 데뷔 무대는
1962년 7월 12일, 런던의 **마퀴 클럽(Marquee Club)**이다.
이 공연은 사실 대타 공연이었다.
당시 인기 밴드였던 Alexis Korner’s Blues Incorporated가
일정 변경으로 무대에 설 수 없게 되자,브라이언 존스의 밴드가 대신 무대에 오른 것이다.
관객 수는 많지 않았지만, 당시 런던 음악계 관계자들은 이 공연을 유심히 지켜봤다.
- 복장: 말끔하지 않았고, 정돈되지 않은 이미지
- 연주: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거칠고 생생했음
- 태도: 기존 영국 밴드들과는 전혀 다른 “야생성”
이 공연 이후,그들은 런던 클럽씬에서 점점 더 많은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 8. 앤드루 루그 올덤 – 이미지 전략가의 등장
롤링 스톤즈의 운명을 결정지은 인물, 바로 **앤드루 루그 올덤(Andrew Loog Oldham)**이다.
그는 당시 19살의 젊은 홍보 담당자였으며, 이미 비틀즈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과도 교류가 있었다.
올덤은 롤링 스톤즈를 보고 이렇게 판단했다.
“이들은 음악도 좋지만,
무엇보다 비틀즈의 정반대 이미지로 키울 수 있다.”
✔ 비틀즈 vs 롤링 스톤즈 (올덤의 전략)
| 단정한 수트 | 헝클어진 옷차림 |
| 웃는 얼굴 | 무표정, 불손한 태도 |
| 친절한 소년들 | 부모가 싫어할 소년들 |
| 사랑 노래 | 욕망과 반항의 노래 |
올덤은 밴드의 불량하고 위험한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강화했고,이는 곧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다.
9. 데뷔 싱글과 첫 음반 계약
1963년, 롤링 스톤즈는 **데카 레코드(Decca Records)**와 계약을 맺는다.
흥미롭게도, 데카는 얼마 전 비틀즈를 놓친 회사였다.
그들은 롤링 스톤즈를 통해 “두 번째 기회”를 잡고자 했다.
✔ 데뷔 싱글: 〈Come On〉 (1963)
- 척 베리 곡 커버
- 상업적으로 큰 히트는 아니었지만,
- 차트 21위 기록
- 밴드의 이름을 영국 대중에게 처음 각인시킴
이후 발표된 〈I Wanna Be Your Man〉 역시 히트를 기록하며 그들은 빠르게 주류 무대로 진입한다.
10. 데뷔 당시 롤링 스톤즈의 정체성
1962년 데뷔 당시 롤링 스톤즈는 단순한 록 밴드가 아니었다. 그들은:
- 미국 흑인 블루스를 영국 청춘의 언어로 번역한 밴드였고,
- 순응과 예절의 문화에 반기를 든 세대의 대변인이었으며,
- 음악뿐 아니라 태도, 이미지, 삶의 방식까지 바꿔놓은 존재였다.
특히 믹 재거의 무대 퍼포먼스는 당시 기준으로는 충격적이었다.
- 성적 암시가 담긴 동작
- 도발적인 표정과 제스처
- 무대 위에서의 자신감과 도발
이는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었다.
11. 브라이언 존스의 주도권과 내부 긴장
초기 롤링 스톤즈에서 실질적인 리더는 브라이언 존스였다.
- 밴드 결성
- 이름 결정
- 음악 방향 설정
- 레퍼토리 구성
모두 그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점점 믹 재거와 키스 리처즈의 작곡 파트너십이 부각되면서,
밴드의 권력 중심은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한다.
이 변화는 훗날 브라이언의 고립과 탈퇴,
그리고 비극적인 죽음으로 이어지게 되지만,
1962년 당시에는 아직 표면화되지 않은 긴장이었다.
12. 롤링 스톤즈의 데뷔는 왜 특별했는가?
1962년의 데뷔는 단순히 “한 밴드의 시작”이 아니었다. 그것은:
- 블루스의 부활이었고,
- 영국 록의 방향 전환이었으며,
- 청춘 반항 문화의 공식화였다.
이전까지 영국 음악은 미국 음악을 모방하거나 정제된 형태로 수용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롤링 스톤즈는 미국 블루스를 정제하지 않고,
오히려 더 거칠게, 더 노골적으로 재해석했다.
그 결과, 그들은 단순한 모방자가 아니라 자기만의 언어를 가진 록 밴드가 되었다.
13. 정리 – 1962년, 전설의 출발점
1962년, 롤링 스톤즈는 아직 전설이 아니었다.
- 무명 밴드였고,
- 장비도 부족했고,
- 미래는 불확실했으며,
- 내부 갈등의 씨앗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갖추고 있었다.
✔ 음악에 대한 광적인 사랑
✔ 블루스에 대한 진짜 존경
✔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태도
✔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를 자극하는 긴장감
이 모든 것이 결합되어 훗날 “록의 역사 자체”가 될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